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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스시티

장인과 메이커, 그들이 사는 세상

세운상가와 을지로 일대에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지역 산업 인프라는 설계 도면만 주면 그 자리에서 뚝딱 물건을 만들어낼 정도로 놀라운 수준의 문화 생태계를 구축했다. 오랫동안 숙련을 거친 각 분야의 제조업 장인들이 이 지역처럼 한데 모여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세운상가는 1960~1980년대 전자 산업 붐과 함께 유일무이한 종합가전제품 상가로 명성을 누렸는데, 이러한 과거의 영광은 당시 세운상가를 지탱하던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각 분야 기술 장인들의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용산전자상가 설립과 번복된 재개발의 여파로 많은 장인이 이곳을 떠났지만, 오래도록 제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기술을 갈고 닦은 이들도 결코 적지 않다.

‘백남준의 손’이라 불리며 세계적 거장의 작품 엔지니어링을 도맡다시피 했던 이정성 장인은 당시 내로라하는 수리공들이 모였다는 세운상가 내에서도 TV 수리계 최강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서울시에서는 이처럼 수많은 기술 장인 중 한 분야에서 최소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세계적인 기술 장인을 '세운 마이스터'로 선정한 바 있다. 이들의 존재는 다음 세대에게 고유 기술과 전문성을 공유함으로써 제4차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이러한 지역성을 높게 보고 세운상가에 문을 연 개방형 디지털 제작소 팹랩 서울은 이 동네에 축적된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국의 새로운 메이커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세운상가의 장인들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운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메이커스 양성에 힘쓰고, 수많은 청년 예술가와 메이커들은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장인들의 실질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자 이곳을 찾는다. 전 세계적으로 ‘메이커 운동’이 열풍인 요즘, 을지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제공 팸랩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