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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미식회

젊은 입맛까지 사로잡은 노포들

지역의 긴 역사만큼 을지로에는 오래된 노포가 많다. 세월에 낡은 외관은 다소 허름해 보여도 묵묵히 이어 온 깊은 맛은 오래된 단골은 물론이고, 젊은 힙스터의 입맛까지 사로잡는다. 을지로의 노포를 소개하며 이북 요리를 제일 먼저 입에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많은 이야기가 첩첩이 쌓인 동네의 오늘과 가장 닮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6·25 전쟁 후, 급작스레 고향을 잃게 된 실향민은 청계천 일대에 판잣집을 이뤄 살았다. 당시의 산업, 문화 중심지는 종로. 시대 상황에 발맞추어 몇몇 실향민은 종로뿐만 아니라 종로와 마주하는 을지로 일대에도 이북 냉면 가게를 차렸다. 1946년 개업한 우래옥에 이어 1950년에는 평래옥, 1985년에는 을지면옥이 개업해 업체별로 개성 있는 냉면 맛을 이어오고 있다.

을지로 노동자의 먼지 쌓인 깔깔한 목을 적셔준 건 시원한 국물 한 숟갈과 소주 한 병이었다. 이 일대 곳곳에 문을 열고 이웃사촌이 된 여러 노포가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더우나 추우나 고된 노동을 잠시나마 잊고 정붙인 이와 이런저런 잡담을 늘어놓을 수 있었다. 푸짐한 감자탕으로 유명한 동원집 역시 30여 년 넘게 운영 중인 노포 중 하나이다. 입구 쪽에서 매일매일 한 솥 가득 펄펄 끓고 있는 감잣국은 식사하기에도 좋지만,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반주를 절로 부르기에 가게 앞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한 긴 줄이 늘어선다.

바로 옆 골목에서는 앉자마자 묻지도 않고 생맥주와 바짝 마른 노가리가 사람 머릿수만큼 잽싸게 차려지는 노가리 골목이 인파로 북적인다. 여름에는 낮이고 밤이고 왁자한 데다 봄에는 ‘서울판 옥토버페스트’라 불리는 ‘을지로 노가리 호프 축제’가 열려 문전성시를 이룬다. 환히 불을 밝힌 골목에 고소한 냄새가 자욱하고 넥타이 맨 젊은이와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엉덩이를 한데 부대끼고 앉아 연신 잔을 부딪치는, 이른바 야장의 세계. 야외 골목을 가득 메운 노가리 골목의 모습은 을지로에서 이뤄진 세대 대통합의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