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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골목

인쇄를 하려면 이곳으로 가라

인쇄 관련 업체가 밀집한 을지로의 좁은 골목에는 언제나 지나갈 순번을 기다리는 이들로 긴 줄이 늘어선다. 각 업체 사이에서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 오토바이와 삼발이가 내달리는 소리, 인쇄기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내지르는 고성과 투박한 말들이 바삐 오가는 골목은 마치 전쟁터를 연상케 한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공고한 규칙 아래 복잡한 인쇄 공정이 쉴 틈 없이 서로 맞물려 진행되고, 이 과정을 거치면 책, 달력, 비닐 백 등 일상 속 다양한 물건에 활용되는 하나의 인쇄물이 비로소 완성된다.

서울 최대 인쇄업 밀집 지역으로 꼽히는 인쇄 골목은 을지로3가와 4가 남쪽 일대 그리고 충무로 일대에 이르는 넓은 규모다. 손님이 찾기 쉬운 대로부터 골목 안쪽 깊숙이까지 크고 작은 인쇄 관련 업체가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종이를 공급하는 지업사부터 인쇄소, 제본소, 여러 후가공 업체까지, 어깨를 맞댄 채 골목 안은 채운 가게들은 각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체계적인 분업화를 통해 각 공정을 유기적으로 맡아 하나의 인쇄물을 완성하며 동고동락한다.

언제나 많은 물량의 종이가 건물의 높은 벽까지 빽빽이 쌓인 곳은 지업사로 인쇄에 필요한 다양한 종이를 각 인쇄소에 공급한다. 모든 지업사는 숙련된 재단사와 재단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거래처가 원하는 종이 규격에 맞게 재단해 배달한다. 지업사로부터 발주한 종이가 도착하면 인쇄소에서는 디자인된 작업물을 인쇄하기 시작한다. 이때 인쇄기 한 대마다 기장과 조수가 각각 필요한데, 조수가 종이를 끊임없이 기계에 공급하고 잉크 상태를 점검하는 동안 총감독자인 기장은 인쇄 중인 종이를 중간중간 한 장씩 뽑아 인쇄 상태를 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고 알맞게 조절한다. 인쇄물은 필요에 따라 코팅, 박, 형압, 제본 등 다양한 후가공을 거치는데, 다양한 기술을 보유한 후가공 업체가 한데 모여 있다는 점은 인현동을 필두로 한 을지로 인쇄 골목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