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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세상의 모든 재료

세상 모든 잡다한 물건은 을지로로 통한다. 이 일대에서 눈에 띄는 재료만 해도 조명, 타일 도기, 금속, 목재, 벽지, 페인트, 포장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일대가 제대로 된 상공업 지역으로 발돋움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 황금정(현 을지로) 이남에 일본인 거주지가 생겼고, 체계적인 도로망이 갖춰지면서 을지로는 상업의 중심지이자 대표 거리가 되었다. 자연스레 대로를 따라 일본인을 상대하는 영세한 공업지대가 자리 잡았다.

6·25 전쟁 직후에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공구 상가가 생겼고, 1967년에 들어서기 시작한 세운상가 주변부에는 기존의 공구 상가와 제조업 공장이 모여 끈끈한 산업지대를 형성했다. 이후 강남개발로 인한 건설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목재, 타일, 벽지 등 모든 자재를 구할 수 있는 집적 효과로 전국의 건축업자가 을지로로 몰려들었다. 도로가 반듯하게 닦여 있어 편리한 교통과 서울의 중심부라는 지리적 이점도 이 지역의 부흥에 일조했다.

1980~199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며 ‘목재의 메카’로 불렸던 을지로 목재 골목은 대다수가 저렴한 지대를 찾아 외곽으로 자리를 옮긴 상황이지만, 중부시장 인근에서 지금까지 남아 운영 중인 목재소를 만날 수 있다. 다양한 금속 관련 업체가 밀집한 입정동과 산림동의 금속 골목은 미로 같아 원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이때 도로변에서는 금속 재료를 주로 판매하고, 골목길 안 소규모 공업사에서는 용접과 주물을 비롯해 정밀 제작을 다룬다는 점을 기억해두면 좋다.

또한 을지로3가역 1번 출구부터 3번 출구까지 약 250m 구간은 140여 개의 타일 도기 업체 중 80여 개가 몰려 있는 타일 도기 특화 거리이다. 을지로4가역에서 을지로3가역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은 조명 업체 200여 개가 모여 있는 조명 특화 거리로 1990년대 인근 전자상가의 붐과 궤를 함께하며 발전했다. 벽지 매장은 을지로4가역을 중심으로 방산시장 골목 안까지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 방산시장은 포장재의 대명사로 통할 만큼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어느덧 을지로는 수많은 이가 이름만 믿고 찾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다양한 자재를 구하는 예술가,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학생, 건설업자들이 이곳을 꾸준히 찾는다. 셀프 인테리어나 DIY가 보편화되면서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 방문도 점차 늘고 있다. 무엇보다 수많은 가게의 물건을 직접 보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고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발품을 팔아서라도 내 집과 물건이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를 바라는 이 시대에, 세상의 모든 재료가 모여드는 을지로는 그야말로 탐나는 길이다.